‘혀[舌]의 난’이 벌어졌다
‘혀[舌]의 난’이 벌어졌다
  • 김희준
  • 승인 2008.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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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넘어선 방송 말잔치 / 김희준



[인터뷰365 김희준] ‘혀[舌]의 난’이 벌어졌다. 일어남직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개그맨 정선희가 미국산 쇠고기 관련 촛불집회에 관한 발언으로 7일 문제의 발언을 했던 ‘정오의 희망곡’을 비롯해 일부 프로그램의 진행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72시간 연속 촛불집회로까지 번지고 있는 범국민적인 집회에 대해 깊이 생각지 않은, 개인적인 ‘인상발언’이 문제가 된 것이다.


서두에서 ‘일어남직한 일’이라 운을 뗀 것은 요즘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등장인물들의 발언 수위가 아슬아슬하며 정선희의 발언도 그 연장선상에서 파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공중파 예능프로그램들에는 케이블 프로그램의 자유분방함이 차입되면서 말의 잔치가 도를 지나쳐 환란(患亂)의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


예능프로그램들이 다루는 대상도 연예인 사생활에서 민감한 시사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졌으며, 특히 메인 MC의 기능이 약화되고 집단 MC 체제로 전환하면서 말의 홍수는 범람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들을 보면서 생각나는 영화들이 있어 키워드로 삼아봤다.



좀비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좀비는 살아있는 시체를 뜻하는 말로 호러영화의 단골 주인공이다. 이들은 대부분 자비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으며 산 사람에게 달려들어 물고 뜯어 아수라장을 만든다.


요즘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하는 패널들은 이 좀비 같다. 한 사람이 무슨 말 한 마디를 하면 흡사 좀비처럼 달려들어 그 말을 한 사람을 물어뜯는다. 이 과정에서 반말은 예사고 진행의 본질은 잊은 채 말꼬리 잡기가 끈질기게 이어진다.


이럴 때 당황하는 패널들은 ‘예능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남의 말을 받아치는 패널들은 순발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의 물고 물리는 언어의 순환을 보고 있자면 마치 좀비 영화의 고전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보는 것같다. 남의 말을 물어뜯어 자신이 생존하는 꼴이다.



혀 짧은 킬러가 등장하는 영화 <예의없는 것들>


이 영화는 혀가 짦아 말을 잘 못하는 극중 킬러가 아예 말문을 닫고 ‘예의없는 것들’만 골라 살인을 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가 생각나는 까닭은 우선 요즘 예능프로그램 MC들이 ‘혀가 짧고’ ‘예의가 없기’ 때문이다.


방송의 전파는 출연자들의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의 것이다. 시청자들의 연령층은 천차만멸로 다섯살박이 아이로부터 칠순 시청자도 있다. 프로그램마다 시청 가능 연령층을 표시하고는 있지만 어느 시청자층이 그 프로그램을 볼지는 출연자들이 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출연자들은 공식적이며 상식적인 호칭을 쓰는 것이 옳다.


혀가 짧은 경우는 출연자들끼리 반말을 하거나 MC보다 어린 출연자들에게 말을 놓는 경우다. 출연자가 십대이라고 해서 삼십대 후반 MC들이 말을 놓으면 안된다. 사석에서야 능히 그럴 수 있다 해도 카메라가 돌아가는 공적인 자리에서는 경어를 쓰는 것이 기본이다. 요즘 막가는 진행에서는 반말이 예사다. 어느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자 중 장영란이 방청객들을 향해 “야!”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혀가 짧아도 한참 짧다.


시청자들에 대해 ‘예의가 없는’ 경우는 출연자들끼리만 예의를 차리는 경우다. 예를 들어 개그맨 이경규가 이혁재에게는 선배일지 몰라도 시청자들에게는 선배가 아니다. 때문에 카메라 앞에서는 아무개씨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같은 맥락에서 중견가수 송대관이나 태진아에게 진행자들이 아무개선생님이라고 칭하는 것도 옳지 않다.

이같은 무예의 진행은 어느덧 바른 말을 기본으로 배우는 아나운서들도 물들이기 시작한 것같다.


아나운서들이 집단 진행하는 프로그램 <네버엔딩스토리>에서 예전 송골매의 멤버인 구창모를 키르기스스탄으로 찾아간 어느 여아나운서는 댓바람에 “창모 오빠”를 연신 불러댔다. 이 경우는 구창모씨나 구창모 회장이라는 호칭이 백번 옳다. 패널이나 리포터들이 시청자를 무시한 채 자기네들 시점에서 호칭을 쓰는 것은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를 무시한 행동이다.


이들 혀 짧고 예의 없는 진행에 기름을 붓는 것은 다름 아닌 공해자막이다.


패널이나 MC들이 흐름에 휩쓸려 마구잡이 말이나 진행을 했을 경우에도 마지막 거름막은 있다. PD들이 주도하는 편집이다. 이는 PD의 고유권한이며 그 프로그램을 만드는 의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오락프로그램의 PD들은 한술 더 뜨고 있는 실정이다.


PD들은 섣부르거나 어설프거나 예의에 어긋나는 패널들의 진행을 편집하는 대신 자막으로 오히려 부추기기 일쑤다. 모든 예능프로그램의 화면 하단을 장식하고 있는 이들 자막은 어지러운 호들갑과 틀린 맞춤법으로 보는 이들의 정신을 사납게 한다.


개그맨 정선희의 하차로 모든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예인들과 이들 프로그램의 질을 담보할 의무가 있는 PD들은 자신이 출연하거나 만든 프로그램을 다시 한 번 모니터하기를 권한다. 그리고 새삼 공인의 방송 매뉴얼북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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