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에서 바라본 여의도 풍경
‘간송미술관’에서 바라본 여의도 풍경
  • 황기성
  • 승인 2008.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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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국회 막장의 정치와, 정치인들 / 황기성



[인터뷰365 황기성] ‘간송미술관’에 사람이 몰린다. <오원 장승업 화파전>(吾園 張承業 畵派展)을 찾는 시민들이다. 항시 닫혀 있던 이 미술관은 1년에 두 번 2주씩 기획전을 무료로 연다. 이즘도 5월18일부터 6월1일까지 14일 동안, 장승업을 중심으로 그와 같은 화파인 ‘조석진’ ‘안중식’ ‘지운영’ ‘강필주’ 등의 작품을 전시하고 우리 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많은 시민들의 관람을 기다리고 있다.



몇 번을 물어가며 찾아가야 하는 성북동 뒷골목, 주차할 공간도 없는 도시 속 오지 같은 미술관을 팔십대 노인부터 중고생까지 남녀 구별 없이 평일에도 줄을 잇는다. 관할 지구대 건물 유리문엔 아예 미술관 안내 표지까지 붙여져 있다.



오래된 2층집 작은 전시관 앞에는 설립자 ‘간송’의 흉상이 있고, 전시관 입구 숲 속 여기저기에 돌탑이며 석불(4개의 서울시 지정문화재)이 길목을 지키고 있다. 두 갈래 ‘보화각(지금의 간송미술관)’으로 올라가는 길은 출입금지 표지로 막혀있다. 안내자도 없이 이정표만 서 있는 무표정한 장소, 시쳇말로 하면 서비스가 제로인 볼품없는 공간이기도한데 그곳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 이유가 무얼까.





간송미술관에 사람들이 몰리는 까닭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그 곳에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무릅쓰고 찾아가는 것은 무언가 큰 자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암울한 시대의 대인(大人) ‘전형필’과 조선시대의 우뚝한 화가 ‘장승업’의 삶과 존재적 향취가 바로 그것이다. 두 사람의 향내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장승업(1843-1897)은 현대한국 동양화의 시조다. 그는 일자무식이었지만 대중에게 다가가 대중의 꿈을 위하여 열정을 다한 화원(화가)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간파한 회화미(繪畵美)를 재구성하고 체계화하기위해 일생동안 최선을 다 하였다. 그는 주어진 문제 앞에 진실했고 정직한 화원이었다. 이토록 투명한 인간 오원은 후세를 이끄는 화파를 낳았으며 자신의 화업(畵業)을 통하여 학력을 뛰어넘는 인간적 완성을 이루어, 그 향기가 11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을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다. 25세 젊은 나이로 유산을 받아, ‘일본의 문화말살정책에 맞서는 길은 우리문화재를 수호하는 길 밖에 없다’ 는 믿음으로 전국각지에 사람을 풀어 일인(日人)들의 문화재 약탈을 막았던 선각자다. ‘훈민정음원본’을 비롯하여 대부분 국보급인 고서 1만여 점, 서화, 도자기, 석조물 등 골동품 3천여 점을 소장하여 최초로 사설박물관을 만들었고, 민족교육의 의지로 사학(동성학원, 보성 중고등학교) 을 일으켰던 큰 인물이다.





쌀 한가마니 16원, 기와집 한 채 값이 1000원이던 시대에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68호)을 20,000원에 사들인 바보(?) 같은 식민지 청년 ’전형필‘ 이 갈수록 후인들에게 빛을 내고 있다.



식상한 정치행태 잊는 삶의 향기로운 행렬


오늘도, 성북동 네거리에는 간송 미술관을 찾는 시민들이 많이 있다. 마치 투표소를 찾아가는 사람들처럼 담담해 보인다. 그들의 행보는 바쁘지 않았고 초조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이미 선거 때가 지났으니 정치하는 사람들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았다. TV에서 본 L씨와 M씨의 ‘멋쩍고 이상한 악수’까지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토록 정치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식탁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우는 데도 고마워하는 기색이 있지도 않았다. 쉴 틈 없이 말 잘하던 사람도, 가장 원칙을 지킨다던 사람도, 정작 소신을 듣고 싶은 문제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유를 알려 하지도 않는다. “국가 국민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라고 여기저기서 외치고 있건만, 그들에게는 이미 정치인들이 술청에서 외치는 건배사쯤으로 들리는 것 같다. 다만 그들의 정지된 표정 속에는, 정치하는 사람들에게서 ‘권력에 대한 집착력’ 의 차이만 보일뿐이고, 그 등급에 따라 <정치가> <정치인> <정치꾼> <정상배>로 분류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성북동 미술관을 찾아가는 사람들에게서, 17대 국회의원들은 어떤 등급을 받고 있을까. 백가지 허물은 변화를 위한 과정이라고 덮어 두자. 그래도 FTA 논쟁만은 끝장을 냈어야 했다. 이렇게 실업자가 많은 시대에 국회의원 한 사람이 4년 동안 19억 1980만 원씩이나 받아갔다면서, 정부가 제기한 ‘한미 FTA’를 논리 있게 정리하지 못하고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하고 나간다면, 그동안 온 나라를 패 가르며 싸움 시켜 소진된 국력은 누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적어도 ‘국회’가 존재한다면, 무슨 결론을 내어놓고 일어서야 하는 것이 상식이고, 임기가 있는 사람들의 도리가 아닌가. 하지만 그들은 이것조차 벌써 접어버린 것 같았다.





성북동을 찾는 사람들은 허름한 미술관 경내에 있는 간송의 흉상 앞에 서서 경의를 보낸다. 그들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풍전등화 일 때 그래도 만대를 바라보며 문화재약탈을 가로막고 지키기 위해서 전 재산을 다 버렸던 바보 -간송의 ‘12시 5분 전의 미소(흉상의 표정)’를 보면서- 오로지 ‘권력’밖에 보이지 않는 한심한 여의도 풍경을 잠시나마 잊어보려는 심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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