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아난 O자의 전성시대
다시 살아난 O자의 전성시대
  • 김희준
  • 승인 2008.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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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복고풍 탄 재밌는 O자들 실록 / 김희준



[인터뷰365 김희준] 드라마에 ‘O자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드라마 제목에도 등장인물 이름에도 유독 ‘O자’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차화연이 오랜만에 컴백한 SBS 일일 드라마 ‘애자 언니 민자’는 이름 끝자가 ‘자’인 자매가 주인공이다. 당돌, 도도하고 독특한 이미지였던 젊은 날의 차화연은 가족에게 헌신하는 후덕한 중년여성 민자로 돌아왔고, 철없고 다소 허영기 많은 그의 동생 역에는 이 같은 캐릭터 표현에 일가견이 있는 이응경이 출연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또 한 명의 O자는 민자의 시동생의 아내, 그러니까 민자의 손아랫동서인 원자다. ‘똑순이’ 김민희가 맡아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이 캐릭터의 성은 구씨, 그러니까 사고뭉치 시동생을 구원한 구원자인 셈이다.



이름으로 등장인물 캐릭터를 백분 드러내고 있는 인기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에는 극중 삼남매 원수 복수 선수에 (복수의) 화신, 모지란, 정나미, 이기적 등 줄줄이 특색 있는 이름들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 단연 으뜸은 극중 아버지 한심한의 30년 된 세컨드 역을 맡은 분자, 복분자다. 첩의 작명으로는 코믹 걸작이 아닐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애자 언니 민자’의 애자 이응경과 ‘조강지처 클럽’의 분자 이미영은 헤어 스타일까지 비슷하다. 여기에 춘자도 가세했다. 19일부터 새로 시작한 MBC 일일 드라마 ‘춘자네 경사났네’의 타이틀롤 역시 춘자라는 이름의 중년여성이다. 다양한 어머니 역을 소화해온 고두심이 푼수끼 많고 좀 정신없는 캐릭터 춘자 역으로 등장해 ‘철없는 어머니’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요즘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복고풍이 감돌고 있는데 드라마 주인공 이름이 ‘자’로 끝나는 것 역시 그 기운의 일부라 할 수 있다. ‘O자’로 끝나는 이름은 세월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 우리 조부모 세대가 부모 세대에게 흔히 지어줬던 이름이다. 조부모 세대는 일제 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고 일본식 여성 이름인 ‘~꼬(子)’에 익숙해 그냥 한글 이름 끝자로 삼았을 것이다. 당시는 먹고 살기도 어려웠을 때고 또 지금보다 훨씬 남아선호사상이 심했을 때였기 때문에 여자아이들 이름은 항렬도 따르지 않고 쉽게 짓는 경우가 흔했을 것이다.





2005년 방영됐던 인기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가 이름 때문에 놀림을 당해 MT를 갔다가 울며 혼자 돌아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O자는 O순이보다 좀더 해묵은 촌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중문화 코드로 보자면 O자, 특히 영자라는 이름은 대중문화에 있어 한 획을 그은 이름이다. 1975년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조선작 원작 소설을 김호선 감독이 영화화한 이 작품은 이른바 호스티스 영화 붐을 일으키며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70년대 영자가 특별했던 까닭은 산업화로 치닫던 그 당시 우리 누이들의 자화상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영자는 시골에서 올라와 가정부로 일하던 중 집 주인에게 강간당하고 쫓겨나 공장 일을 한다. 하지만 박봉에 못 견뎌 버스 차장을 하다가 사고로 한쪽 팔을 잃고 사창가에까지 흘러들어간 기구한 운명의 여자다. 영자의 인생유전은 당시 농촌에서 무작정 도시로 올라와 어떻게든 돈을 벌어 고향의 부모를 봉양하고 동생들 공부를 시켜야 했던 여성들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당대를 읽어낼 수 있는 코드라 할 수 있다.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한 이 영화는 주인공 영자 역을 맡았던 염복순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고 속편에 이어 ‘창수의 전성시대’(극중 영자를 사모하는 남자의 이름이 창수였다)까지 만들어졌다.





70년대의 코드가 ‘영자’였다면 80년대 코드는 ’순자‘였다. 80년 신성일 이영옥 주연의 영화 ‘순자야 문열어라’가 만들어졌는데 이는 이정환의 1977년작 동명 소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제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당시 대통령 영부인의 이름과 같다 해서 주제곡을 부른 가수까지 활동을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또 가수 심수봉이 1983년 드라마 주제곡으로 만들었던 ‘순자의 가을’ 역시 ‘올가을엔 사랑할 거야’(방미 노래)로 곡 이름을 바꿔 다시 발표해야 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너무나 흔하고 쉬운 이름, O자로 끝나는 이름들에 담겨있는 ‘실록’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21세기에 새삼 안방에 등장한 ‘O자’들에는 이 같은 20세기적 무거운 이면이 담겨 있지는 않는 것 같다. 대신 연령으로는 고단했던 부모 세대, 캐릭터로는 투박하고 소박한 인물, 그리고 감정적으로는 시청자들에게 친근감 있는 인물의 표상으로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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