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만 남기고 떠난 ‘시인 길옥윤’ 이야기
노래만 남기고 떠난 ‘시인 길옥윤’ 이야기
  • 김두호
  • 승인 2008.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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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좌절에 빠졌을 때 시를 썼다는 색소폰 대가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지난 5일 흙으로 돌아간 ‘토지’의 작가 박경리 여사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 안에 아쉬움과 슬픈 여운을 남겼다. 생전에 소설을 쓴 분인데, 떠나는 시간을 앞두고 꿈속에서도 만나지 못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남긴 시 3편이 나중에 알려져 또 다른 감동을 주기도 했다. 짧은 몇 줄의 문장에 무한한 마음의 세계를 함축해서 담아내는 시는 시인이 아닌 사람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길 때가 많다.



길옥윤은 올해 데뷔 50주년 기념공연을 준비 중인 원로가수 패티김의 전 남편이다. 황폐해진 모습의 병약한 노인으로 일본에서 돌아와 휠체어에 실려 병원을 전전하다가 서울 강동구에 있는 어느 병원에서 쓸쓸하게 눈을 감은 것이 1995년 봄날이었다. 외롭게 떠났던 그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패티김과 화려했던 부부 시절도 함께 떠올리며 당시 이혼에 대한 연민의 정도 함께 느낄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달 MBC-TV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패티김은 “당신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부군과 헤어진 것이 아니냐”는 요지의 질문을 받고 “이혼하고 4년 뒤 재혼했고, 이혼 사유는 남편의 음주벽과 도박벽 때문이었다”고 해명해 새삼 화젯거리가 됐었다.



길옥윤은 박춘석 이봉조 김희갑 등과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가요무대와 음반시장을 움직이는 주력 작곡가였고 음악계의 실력자였다. 일본에서 재즈연주자로 활동하다가 1966년 귀국해 패티김에게 <4월이 가면>의 신곡을 선물하며 사랑에 빠졌던 그는 결혼과 함께 눈부신 스타 음악 커플의 신화를 만들어 나갔다. <사랑하는 마리아>는 일본에서도 히트곡으로 떴고 <이별> <사랑의 찬가> 등 부르는 노래마다 밤하늘의 폭죽처럼 터졌다. 무명의 혜은이도 길옥윤을 만나 <당신은 모르실 거야> <당신만을 사랑해> <감수광> 등 수많은 히트곡을 불렀다.



길옥윤을 모르는 세대를 생각해 머리말이 길었지만 이제 그와 관련해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시인 길옥윤’으로 들어가 보자. 색소폰을 불며 수많은 히트 가요를 남긴 음악인 길옥윤도 시를 쓴 때가 있었다. 1982년 초 미도파백화점 화랑에서 <작곡 연주생활 35주년 기념/ 길옥윤 시화 초대전>에 초청을 받은 필자는 시를 쓴 그와 인터뷰를 했었다.



“잠시 잠들었다 깨어보니 백발이 성성하더라는 옛말 같이 덧없이 이순(耳順)의 나이를 앞에 두었습니다. 화백님들의 도움으로 마련한 시화전에 소개한 시들은 저의 진실과 순수의 열정을 표현한 영혼의 분신 같은 언어들입니다.”



시화전을 열게 된 그의 인사말이었다. 당대 화단의 대표적인 화가였던 변종하 김재배 김충근 원문자 한풍열 우희춘 유종상 강지주 김환 전래식 김비함 안영일 서정철 신동우 화백 등이 길옥윤의 시화전에 참여했다. 그때 길 시인이 쓴 시 몇 점을 소개하면서 본인에게 고백한 뒷이야기들을 소개한다.



<아베마리아>

이 어두움 속에 / 보이지 않은 무언가를 / 보고자 하는 / 어리석은 마음을 / 구하시옵소서 / 이 헤아릴 수 없는 / 악몽을 안고 / 땅위에서 허적거리는 / 욕망만의 육신을 / 인도 하시옵소서 / 빛을 내리시옵소서 / 용기를 주시옵소서 / 아베마리아 / 아베마리아.


<리허설>

리허설 많이 해봐요 / 터미널에서 / 정거장에서 / 공항에서 / 부두에서 / 정말 헤어질 때 / 눈물이 덜 나오게 / 오늘 커피를 나누고 / 내일 캔들을 켜고 / 언제나 꼴찌라는 법은 / 없잖아 / 우리도 / 애들처럼 달려봐


<세월>

많은 밤을 혼자서 지냈네 / 너무나 깊이 사랑했기에 / 사연들을 가슴에 안고 / 세월만 흘렀네 / 밤에나 낮에나 가을도 겨울도 / 그대 생각에 잠겨 세월만 흘렀네 / 기다리고 기다리는 내 사랑은 / 돌아오지 않았네.


<1990년>

1990년 / 정아는 스물하나 / 1990년 / 꽃피는 스물하나 / 봄이 오면 사랑을 알고 / 여름이 오면 피가 끓겠지 / 기차를 타고 정아 생각 / 산을 볼 때도 정아 생각 / 1966년 엄마는 사랑을 했어 / 1966년 아빠는 꿈을 꾸었지 / 노래할 때도 정아 생각 / 춤을 출 때도 정아 생각.


<형>

가문의 대표선수 형이 가셨다 / 하마마쓰 상공을 지나 / 나리따로 가면서 / 추도 / 한세상 실컷 방황 끝에 / 가셨다 / 차라리 하늘 위에 두어라 / 근심일랑 걱정일랑 / 되며는 / 안 만나고 살자 / 친척이건 친구이건 / 형 / 모두 다 털어놓고 / 한평생 만화 주인공처럼 / 살다갔지만 / 누이 아우 노모나 / 미워하지 않더라 / 알어? / 현해탄을 건너서 / 폐허에 피였던 꿈 / 동경은 패전의 소음에 찬 / 망자의 계곡이었지 / 형 /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했는지 / 따지지 말어 / 누가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가 중요해 / 형 / 형의 죽음은 / 우리들에게 화목을 가져왔어 / 형은 소생했어 / 이제서 형은 형이야 / 잘 있어 금방이야.


<언젠가>

언젠가 찾을 날이 있겠지 / 그대를 그 자리에서 / 언젠가 찾을 날이 있겠지 / 무언가 묻고 싶어서 / 한 때 그대는 내사랑이었어 / 오래전 지난날 / 저녁은 따뜻했고 자유로웠지 / 한 때 그대는 내사랑이었지 / 저녁이 노을로 불탔을 때 / 그리고 이제는 아무도 모르는 체 / 둘이는 그날부터 멀리멀리 / 흘러오고 흩어지고 / 과거가 얼마나 아름다웠는 지 / 언젠가, 언젠가, 언젠가.


<네 마리의 붕어>

나는 네 마리의 붕어가 되고 싶다 / 한 마리의 나는 / 물 속을 마구 헤엄쳐서 / 제멋대로 자유를 즐기고 / 또 한 마리는 밤낮 잠만 자면서 / 휴양과 건강만을 생각하자 / 또 한 마리는 예쁜 것만 보고 찾고 / 갖고 안고 그렇게 살자 / 마지막 한 마리는 / 스물네시간 진지하게 / 근면히 일만하지 / 나는 2월 22일생 / 성좌는 아쿠에아리스 / 띠는 붕어좌.


<떠나기 전날 밤에는>

떠나기 전날 밤에는 / 루즈를 바르지 마세요 / 떠나기 전날 밤에는 / 비가 주룩주룩 와도 좋아 / 흠뻑 젖으면서 공원을 거닐 테니까 / 떠나기 전날 밤에는 / 눈화장도 하지 마세요 / 혹시나 눈물이 나면 / 팬더곰처럼 우스운 얼굴이 되니까 / 떠나기 전날 밤에는 / 하얀 와인과 하얀 드레스 / 캔들에 불을 켜고 마주 앉아요 / 떠나기 전날 밤에는 지금까지 말했던 거짓말 옛사랑 얘기 등등 / 모두 다 털어 놓아요.



시화전에 소개된 길옥윤의 시는 모두 35편이었다. 대부분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우울하고 고독할 때 그리고 누군가가 간절히 보고 싶을 때 쓴 듯한 시였다. 그는 필자에게 시를 쓴 배경을 설명할 때도 그러한 심경을 밝혔다. 그가 평생 그리워하며 사랑했던 사람 중에 패티김과 사이에 낳은 딸 정아가 있다. 결혼 이듬해인 1967년 생이니 지금은 이미 41살 중년 여성이다. 그는 일본에서 재혼한 부인과 사이에 손녀 같은 딸 하나를 두었다. 그 딸도 만년에 그에게 삶의 유일한 꿈이었고 희망이었다. 어린 딸이 그린 아버지의 초상화를 명함 뒷면에 박아서 가지고 다니며 자랑했다.



<형>이라는 시에는 현해탄을 오가며 방황의 삶을 살았던 동생 못지않게 사연이 많았던 형을 애절하게 추모하는 동생의 절절한 그리움이 마디마디 묻어있다. 왜 어두운 시밖에 없느냐고 물었을 때 ‘시인 길옥윤’은 말했다.



“시를 쓰고 싶은 때는 대부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독과 좌절에 빠져 있을 때였다. 시는 고통에서 나오는 독백 같다. 곁에 누가 있다면 시를 쓰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여행길이나 환경에 즐거운 변화가 생기면 그 기분을 적고 싶었다. <네 마리의 붕어>는 사우디아라비아 위문공연을 같다가 붕어목걸이를 사면서 생각이 나 쓴 시였다.”



본명은 최치정. 1927년 소월의 시에 등장하는 진달래꽃의 고향 영변에서 태어났다. 치과대를 다녔지만 색소폰을 불며 음악의 길로 들어섰던 길옥윤은 시인이 아니라 영원한 음악인이다. 그는 패티김과 이혼 후 몇 차례 사업을 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고 귀국했었다. 모두가 그의 곁을 떠나 제대로 쉴 곳도 없었다. 그는 중환자 병동에서 1995년 3월 17일 썰렁한 새벽바람을 실려 어디론가 떠났다. 영결식에서 그의 흘러간 옛 아내가 찾아가 서울의 주제곡이 된 <서울 찬가>를 불러주며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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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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