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전투를 기억하라” 40%짜리 한국인의 감동 충고
“청산리전투를 기억하라” 40%짜리 한국인의 감동 충고
  • 황기성
  • 승인 2008.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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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에 만난 조선족 가이드 양성삐(양승필) / 황기성



[인터뷰365 황기성] 중국여행을 하다보면 현지 가이드로 일하는 조선족 청년들을 자주 만난다. 연변대 일본어과를 나와 중국의 서남쪽 ‘곤명’에서 일본인 관광객 가이드로 8년, 요즘엔 한국인 관광객을 위하여 3년째 일하고 있다는 양승필(36)은 특별한 데가 있어보였다.


‘양따꺼’(양형!). 우리는 그를 이렇게 불렀다. 양따꺼는 독립운동가였던 외조부와 조부를 따라 일제치하 경북 경주에서 연변으로 이주한 양이호 씨의 아들이다. 당시 아버지가 7세, 큰 고모가 13세, 삼촌이 3세였다고 했다. 양따꺼는 젊고 착해 보였지만 직업적이기 쉬운 흐트러짐이 없이 유창한 한국어(표준어)와 중국어를 구사하며 보이지 않는 자존심 같은 것이 그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거창한 온천장의 3시간짜리 스케줄을 쪼개어 인터뷰를 청했다.



양따꺼! 실례지만 솔직하게 외투부터 벗어보라. 그대는 지금 어느 나라 사람인가?그대에게 중국과 한국은 무엇이며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 (뜻밖의 질문인 듯 그는 안색이 변했다가 바로 수습하면서 침착하게 대답을 시작한다)

나는 중국인이다. 두 분의 어머니를 가진 사람으로 비유하면, 한국은 낳아준 어머니고, 중국은 길러준 어머니다. 운명적으로 두 분의 어머니를 가진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이제와 운명을 탓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나를 세상에 낳아준 어머니로 한국에 감사하며, 길러준 어머니로 중국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번엔 질문자가 찝찝해졌다. 이 청년이 의외로 떳떳한 중국인인 데 놀라웠고 “나는 외로운 한국 독립운동가의 자손이오”하는 식의 신파 대사쯤을 내심 기대했던 질문자가 도리어 머쓱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한국과 북한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평소 생각하고 있는 대로 솔직하게 말해 달라.

솔직히 나는 북한에 대하여 ‘좋다’ ‘나쁘다’하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북한 주민이 기아에 허덕인다는 말을 들으면 속이 상하는 정도의 동족으로서 관심 외에 다른 친근감 같은 것이 없다. 북한에 비하여 한국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한국은 면적이 이곳 운남성의 4분의1 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다. 인구도 운남성이 4700만이니 서로 비슷하다. 그런데 운남성은 가난하고 한국은 세계 12위의 경제 강국이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랍다. 특히 세계 일류의 첨단제품을 양산하는 ‘삼성’에 감탄한다. 그러나 말하고 싶지 않지만 한국이 미울 때가 있다. 조선족이 한국에서 천대받는 소식을 보도로 접할 때, 그때마다 나는 한국이 미워진다. 그럴 수 있는가.



알겠다. 이제부터 중국인 양성삐(양승필)에게 묻겠다. 중국에 대한 애국심이 어느 정도이며, 그대는 왜 이곳에 오는 한국 관광객들이 ‘운남성 군관학교(운남육군 강무학교)’ 보아 주기를 원하는가.

앞서 말한 대로 나는 중국인이지만 내 몸 속에는 엄연히 한국의 피가 흐르고 있다. 굳이 애국심을 말하라면 60대 40이라고 할까. 중국이 60이고 한국이 40이다. 독립운동과 우리 집안의 맥이 그렇다 보니 나도 모르게 군관학교를 보아주기 바라는 모양이다. 그곳은 중국의 항일군사 교육기관이었다. 청산리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이범석 장군’이 다닌 학교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나는 한국 관광객들이 과거사를 잊지 말고 기억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청산리전투’란 1920년 10월 항일 독립운동가인 김좌진과 홍범도 장군이 각각 이끄는 대한독립군 등이 주축이 된 독립군 부대가 만주 화룡현 청산리 등지에서 일본군과 10여 차례에 걸친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것을 말한다. 그가 한국 무장독립운동 사상 가장 빛나는 전과를 올린 청산리전투에 참전한 이범석 장군을 상기하며 이 장군이 다닌 군관학교를 둘러볼 것을 바라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그러면서 과거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일러주는 이 40% 짜리 한국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국사과목이 대입시에서 배제된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학교교육의 현실이다. 이런 실정에 ‘청산리전투’와 ‘이범석’ 장군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지금, 한국은 중국시장이 중요하다. 관광산업도 13억의 중국인이 한국을 찾게 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 그러자면 중국인에게 한국을 잘 알릴 수 있고, <중국인과 중국어를 깊이 아는> 열성적인 한국가이드가 꼭 필요하다. 만약에 그런 일로 한국에 취업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대의 애국심을 거꾸로 40대 60(한국)으로 바꿀 수도 있겠나?

재미있는 얘기다. 현재 중국에는 조선족이 200만 명이 있고, 10만 명 이상의 대졸학력자가 있다. 여행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사람도 1만 5천명 (학력은 다르지만) 정도가 있다. 그런 기회가 있다면 나는 환영한다. 애국심이 바뀔 수도 있겠다. 하.하.


끝으로 바라는 것이 있으면 얘기해 달라.

한국여행자들이 중국에 대해 미리 공부를 좀 해가지고 왔으면 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를 감안할 때 한국이 교역 면에서 미국보다 중국과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아내 이홍화(35.고교동창. 곤명 박물관 근무)와 고향에도 가고 싶다. 나의 고향은 여기서 기차를 타고 48시간이나 가야 하는 멀고 먼 북방 ‘연변’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운 인터뷰였다. 한국의 관광당국에는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발로 뛰는 현장의 유능한 사람들이 부족해 보이고 별것 아닌 관광 상품을 현란하게 포장해서 팔아주는 각 나라의 ‘현지 가이드 재산’이 너무 부럽다. 한국도 이제 외국인 공무원을 필요로 한다. 양성삐 같은 사람을 추천하고 싶다.


시간이 흘러가, 만약 중국이 국민소득에서 한국을 앞선다면 그때도 양따꺼가 한국을 기억해 줄까. 비자를 신청했다가 받지 못해 한국을 가지 못했다는, 40%(?) 한국인 양승필을 보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본다. 왜 한국은, 그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빗장을 걸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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